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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onde
그녀는 도통 뜻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동이 튼 아침부터 달이 뜬 저녁까지, 함께 영화를 보고 또 밥을 먹었으며 언제나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하하 호호 얘기를 나누었던 신이치는 어느 평범한 날과 다름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오늘따라 조금 차분하달까. 잠시 자리를 비운 신이치에 란은 찌뿌둥한 몸을 풀어주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서 스트로를 잡아 입에 갖다 댔다. 쪼르륵 빨대를 통해 빨아들인 아메리카노가 시럽을 넣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쓴 느낌이 깊게 와 닿아 인상을 찌푸렸다. 대화 상대도 없는 지금, 허공을 방황하며 맴돌던 그녀의 시선이 끝내 신이치가 대충 내빼고 간 빈자리에 닿았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의문들이 방금 전까지의 그의 모습..
서늘한 날씨임에도 실내에는 아직 더운 공기가 가시질 않았는지 삼삼오오 모인 교실 속에는 신기하리만큼 불필요한 수다 따윈 오가질 않았다. 얼굴에는 하나 둘 험한 인상을 그려내며 다수가 잠을 자거나, 멍을 때릴 뿐 공부하는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온도계를 확인한다면 그다지 신기한 것도 아니었다. 적막함 뿐이 나도는 교실 속에서는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샤프로 무언 갈 적는 소리와 또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규칙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낡은 선풍기의 날은 앓는 소리를 내더니 더 이상 소리가 아닌 소음을 내뱉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선풍기가 신경 쓰여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더위 앞에 소리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며 나 살기 바쁜 모두가 그런 선풍기..